또 충동에 졌습니다. (와하하하하하하) <- 웃어서 얼버무리려는 중
이번의 타겟은 Dogs and Cats의 하마구치 리츠코(浜口りつこ) 상과 더불어 S의 명탐정 코난 캐릭터 정립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친 2대 대스승, BLUE KINGDOM의 마스터 토오노 사쿠라코(遠野桜子) 상의 「장미의 약속(薔薇の約束)」입니다. 한때 이 분의 글에 얼마나 열광했는지 과거가 아련하게 그리워지는군요. (솔직히 말하자면 열광이 지나쳐서 번역이랍시고 마구 손댄 탓에 토오노 상의 글은 상당히 비축분이 많습니다;;;)
여전히 배째고 등따고 장으로 줄넘기 중. 문제 되면 사사삭 지워 버릴 예정입니다. 퍼 가시면 자자손손 7대에 걸쳐 저주 내립니다. (위협)
...and less.
나를 묶어두는, 형태 있는 것
장미의 약속
쿠도 가의 정원은 널찍하다.
자연 그대로, 바꿔 말해서 알아서 자라도록 내팽개쳐 둔 넓기만 한 공간에, 근사한 장미원이 세워진 것은, 약 1년쯤 전의 일이었다.
「신이치, 거기 자루 좀 줘」
「어느 자루 말야?」
「에, 에 또, 우선 망으로 된 것부터」
「여기」
「Thank you」
오렌지색 망자루를 넘겨받고 카이토는 한쪽 눈을 찡긋해 보였다.
「쿠로바, 씨는 어떻게 해?」
「그냥 냅둬도 괜찮지만, 그걸 1cm 폭으로 잘라야 하거든. 하기 힘들면 떼어내」
「OK」
카이토의 지시를 따라, 나란히 옆에 선 신이치가, 능숙하게 식칼을 아래위로 움직인다. 칼날이 지나갈 때까지 달콤새콤한 향기가 물씬물씬 일어나고, 높이 걸린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이 한층 향기를 강하게 퍼뜨려, 구석구석을 채우듯이 사방으로 풍겨나간다.
때는 오후 2시. 장소는 쿠도 가의 주방.
「정말 이렇게나 잔뜩 필요한 거냐?」
두 사람의 뒤에서, 의자에 앉은 헤이지가 유리병의 뚜껑을 싸고 있는 비닐을 뜯어내면서, 반쯤 질린 얼굴로 투덜거렸다. 테이블 위에는, 포장을 뜯어낸 것이 넷, 뜯고 있는 것이 하나, 아직 뜯지 않은 것이 하나. 카이토의 명을 받은 헤이지와 신이치 둘이, 일부러 전문점까지 원정을 나가, 차에 한가득 싣고 돌아온 벌꿀병이다.
「푸우가 보면 춤이라도 추겠는데」
가을의 부드러운 햇살을 받아 매끈거리는 황금색으로 빛나는 병을 손바닥으로 두드리면서 헤이지가 중얼거리자, 몸을 돌려 그쪽에 시선을 던진 신이치가 희한한 표정으로 눈썹을 찌푸렸다.
「……'곰돌이 푸우' 말이야?」
「그럼」
「……뜬금없이 푸우는 웬……」
「꿀 하면 푸우, 푸우 하면 꿀 아냐」
헤이지는 별 당연한 것을 묻는다는 듯 힘주어 단언했다. 쓰게 웃고, 신이치는 카이토에게로 다시금 돌아섰다.
「그건 그렇고, 얼음설탕이랑 꿀벌을 다 쓰는 거냐? 달아서 어디 먹겠냐?」
「? 아아, 아냐아냐」
신이치의 질문을 받은 카이토는 손에 든 노랗고 마른 껍질을 팔랑팔랑 휘저으면서 웃었다.
「꿀은 여기에 쓰는 거야. 얼음설탕은 신이치 쪽」
「내 쪽?」
한창 썰고 있던 것을 내려다본다. 올해 가을의 첫 '수확'.
셋이서 살기 시작하고 1년쯤 지난 어느 날 아침, 카이토가 창밖을 가리키며 말을 꺼냈다.
『정원을 유효하게 활용하고 싶은데, 안 돼?』
잡초는 자랄 대로 자라고, 나무는 우거질 대로 우거지고, 흥취가 있기는커녕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힐 것 같은 상태로 버려둔 정원에, 카이토는 바로 그날 오후부터 용감하게 덤벼들었다.
『장미를 심으려고』
두툼한 장갑도 얼굴도 새까맣게 된 마술사가 목적을 발설하자, 명탐정들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고 웃었다.
『경비를 절감하려나 보지?』
『아냐아냐―. 이 넓은 공간을 놀려두는 건 아깝잖아!』
『우리도 옆에서 이득 좀 보려면 야채를 심는 게 훨씬 낫지』
헤이지의 씁쓸한 웃음을, 카이토는 씨익 웃는 것으로 받아쳤다.
『걱정 마. 너희들한테도 '이득'이 있는 장미를 심을 테니까』
카이토가 정원과 격투하며 땀을 뻘뻘 쏟고, 예상한 대로 결국 도울 수밖에 없게 된 명탐정들도 흙투성이가 되어가며, 없는 시간을 쪼개어서 정성들여 가꾼 장미가 꽃을 피운 게 올해 늦봄.
그리고 편의점 비닐봉투로 무장하고 꽃도 다 진 장미원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 딱 사흘 전의 일이었다.
인터폰의 버튼을 눌렀지만, 대답은 없었다.
(무슨 일이지)
고개를 갸웃하고, 시호는 주머니를 뒤져, 항상 가지고 다니는 열쇠를 꺼냈다.
『한 세 시쯤에 우리 집으로 올래? 부탁할 게 있어』
말을 꺼낸 사람은 이 저택의 주인이었다. 집을 나설 때 본 시계로는, 3시 1분 전.
(무언가 급한 일이 생긴 걸까)
그랬으면, 한 사람쯤은 전화를 걸어주었을 것이다.
열쇠구멍에 열쇠를 꽂고 돌린다. 문손잡이를 잡았지만, 철컥철컥 둔중한 소리를 낼 뿐,
(……열리지 않아)
잠기지 않은 문. 아무도 응답하지 않는 인터폰.
오한이 등골을 관통했다.
(설마)
열쇠를 다시 한 번 돌려, 문을 열었다. 현관에,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는 세 사람 몫의 신발.
그렇지만, 신발도 못 신고 나가 버렸을 가능성도 높다.
신발을 신을 여유조차 없이, 끌려갔을 가능성이.
「여보세요, 아무도 없……!」
「뭐냐, 역시 시호잖아」
저편에서 고개를 쑤욱 내민 신이치가, 시호를 확인하고 이쪽으로 달려왔다.
「미안미안. 여기 난리법석이라서. 인터폰이 울리는 걸 못 들었지 뭐야. 열쇠 갖고 왔었냐?」
「……문이 열려 있었어」
속 편한 얼굴에 대고, 가까스로 그 말만을 했다. 빠져나간 핏기는, 아직 돌아오려 하지 않는다.
「우와, 정말?」
「어쩜 이렇게들 조심성이 없을까」
핏기를 대신해, 분노 비슷한 것이 치밀어 올라온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오열로 변할 것만 같은 그 무언가도 무턱대고 밀려 올라왔다.
(역시)
억지로 삼키고 작게 웃었다.
(역시, 이래선 안 돼)
쩔쩔매며 머리를 북북 긁적이는 신이치를 향해, 시호는 굳어진 입술을 열었다.
「주의해야지」
「앗, 시호짱. 왔다 왔어」
거실에 들어서자, 소파에 몸을 묻고 있던 카이토가 팔을 휘휘 내저었다.
「미안해―바쁠 텐데 오게 해서」
「난 상관없어」
「카이토, 현관 문 열려 있었댄다. 마지막으로 들어온 게 너 아냐. 신경 좀 써라」
「어? 어? 잠근 줄만 알았는데... 미안. 다음엔 꼭 확인할게」
요즘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목을 외로 꼬며 종알대는 카이토의 반대편에 걸터앉으면서, 또다시 한기가 시호의 등줄기를 훅 훑고 지나갔다.
정말로, 잠시 잊어버린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바빠서 깜박했을 따름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있지, 시호짱한테 이걸 부탁하려고」
시선을 떨어뜨리고 만 시호에게 맞춰, 카이토는 손에 든 것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여기 사는 남정네들은 하나같이 글씨가 개발새발이거든요. 그렇다고 워드로 인쇄하자니 정서가 없고」
「……뭘?」
1.0mm 굵기의 펜과, 명함 크기만한 하얀 종이.
「여기에 붙이려고」
시호의 옆자리에 앉은 신이치가, 테이블 위의 커다란 유리병을 통통 두드렸다.
「오늘 우리 셋이 만든 거야」
「첫 수확이랍니다―♪」
황금빛을 띤 병과, 얼음같아 보이는 하얀 덩어리가 가득 들어찬 병.
그 사이로 보이는, 노란색의 무엇.
「장미목 배나무과의 낙엽교목. 원산지는 중국. 모과야」
어리둥절한 표정의 시호에게, 신이치가 웃으며 설명했다.
「카이토가 저기 장미원에 심었어. 먹을 수도 있는 장미라면서」
「그리고―이쪽은 모과주, 이쪽이 벌꿀조림. 아픈 목에도 잘 듣고, 피로 회복에도 효과 만점!」
「지금 당장은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다지만 말야」
「오늘 날짜랑, 열매 꺼내는 날짜, 완성되는 날짜를 적어 줬음 해」
붓글씨라면 헤이지가 잘 쓰지만, 이라며 웃는 카이토를, 시호는 어안이벙벙하게 바라보았다.
「벌꿀조림은 석 달, 모과주는 반 년 있다가 우려낸 열매를 꺼내고、그러고도 반 년 더 놔두어야지 겨우 먹을 수 있어. 잊어버리지 않게 오늘 날짜를 써두려고」
백과사전조차 간단히 암기해 버리는 천재 마술사는, 그렇게 말하고 웃었다.
「그래서, 그날이 되면 시호짱도 여기서 우리랑 같이 시음회를 갖는 거야」
시호의 눈동자가 커다랗게 뜨였다.
「중간에 살짝 맛만 볼 때도 부를 테니까」
신이치가 심술궂게 웃었다.
「쿠도, 새치기는 반칙이야」
「내가 그 따위로 쪼잔하게 놀 것 같아. 사람을 뭘로 보냐 바보야」
눈싸움을 하다 결국 웃어 버리는 명탐정들을 보고, 카이토도 할 수 없다는 듯이 웃음짓는다. 그 광경을, 시호는 그저 멍해진 얼굴로 바라보기만 했다.
어떻게?
「그러니까」
무릎 위에 얹은 손을 아주 조금 주먹 쥐려 하는 시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카이토가 입을 열었다.
「시호짱, 언제고 어느 때고, 꼭 옆집에 있어야 돼」
어떻게.
어리석은 질문인 줄 알면서도, 그것만이 머리속에서 빙글빙글 맴돌았다.
어떻게, 알았어?
병원에서 눈을 뜬 카이토가 웃으면서 처음으로 꺼낸 말은, 거짓말은 아니었다.
『시호짱 덕분이네』
그때, 세 사람에게 치명타를 가한 것은 자신이었다.
자신이, 사로잡혔기 때문에.
적지 않은 피해를 입은 그들이, 그럼에도 이 집에서 웃으면서 떠들썩하게 살고 있는 것을, 그 후로 줄곧 지켜봐 왔다. 지켜보면서, 마음 속 어딘가에서 줄곧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녀가 또다시, 이 광경을 산산조각내는 것이 아닐까 하고.
세 사람의 신원이야 들통난지도 이미 오래되었다. 굳이 그녀에게 제재를 가할 필요도 없이, '조직'의 잔당은 직접 그들을 습격할지도 모른다. 그럴 것이다. 그녀는, 지극히 사소하고 작은 '위험 요소'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때때로 고개를 드는 두려움을 가까스로 억누르면서, 어물어물 지켜봐 왔다.
지켜보고, 싶었기 때문에.
「그야, 시호짱이 어딘가로 '나가는' 일이 있어도, 반드시 찾아낼 테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카이토가 덧붙이고, 신이치가 웃으며 일어났다.
「커피나 끓여 오마. 마침 간식 타임이겠다」
「쿠로바가 사 온 양과자도 있고, 나도 고구마 양갱 사다 뒀거든. 먹고 가」
「헤이지 형아, '양과자'가 다 뭐야, 영감님 같애―」
신이치가 옛날 자주 듣던 어조로 약을 올리자, 핫토리는 발끈한 얼굴이 되었다.
「호오호오호오. 사과를 '물과자'라고 하던 놈이 이러쿵저러쿵 할 군번이냐?」
「말이 많다. 틀린 건 아니잖아」
정신없이 태클을 걸고 걸리면서 거실 옆에 있는 주방으로 향하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어딘지 모르게 넋을 놓고 눈길을 주는 시호를 쳐다보며, 카이토는 무릎에 팔꿈치를 짚고 양손으로 턱을 괴었다.
「나 있지, 좀은 잘된 일이라고 생각해」
「……뭐가」
시호는 시선을 카이토에게로 돌렸다.
몸둘 바를 모르는 듯이, 어색하게, 그래도 정면으로 눈을 맞추는 시호를 향해, 카이토는 빙긋이 웃었다.
「시호짱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어서」
「……그게 왜」
「나한테서 눈을 돌리지 못하잖아?」
카이토는 생글거리며 웃고, 시호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러니까, 조금은, 잘 됐어」
턱을 괴고 있던 손을 머리 뒤에서 깍지 끼고, 카이토는 소파 등에 몸을 기댔다.
「시호짱은, 나를 곤란하게 하지 않아. 헤이지를 내버리고 뛰어서 달아나지 않아. 신이치를, 애들 틈바구니에 혼자 남겨두지 않아. 시호짱은, 그런 사람이야」
카이토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걷혔다. 진지한 표정을 감당하기 어려워 살짝 눈을 내리깔고, 그래도 카이토를 향한 채로 반문했다.
「너무 좋게 봐주고 있지 않아?」
「좋게 보고 있어. 그러니까 우리도 좋게 봐 줘」
카이토는 작게 미소를 띠우고 말을 이었다.
「우린 시호짱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튼튼하고, 정신도 똑바로 박혔고, 무슨 일이 있어도 문제없어. 머저리들이 시비를 걸어와도, 따끔하게 혼내고 쫓아 보낼 거야. 뭐가 벌어져도, 변할 건 아무 것도 없어. 우린, 여기에 있고, 여기로, 여기에만 돌아올 테니까」
모양 좋은 손가락이, 마루를 가리킨다.
「그러니까 시호짱도, 변함없이, 그곳에 계속 있어주면 돼」
집게손가락을 응시했다. 기적을 창조하는 마법의 손.
「우린, 그러기 위해서 분발했는걸」
『하이바라 상. ……미야노, 시호 상이지?』
그렇게 묻고, 그을려 새까맣게 변한 손을 내밀어 주었다.
『함께, 돌아가자』
(어디로?)
그런 생각은, 왠지 조금도 떠오르지 않았다. 더러워진 손에, 자신의 손을 뻗었다.
『돌아가자』
그렇게, 태어나고 자랐던 그곳에서, 그녀는 몸을 일으켜 걸어나왔다.
「……내 발음, 엉망이야?」
시호가 입을 다물어 버리자, 고개를 살짝 갸우뚱하며, 카이토가 당혹한 듯이 눈썹을 모았다.
「가끔 엉터리로 발음할 때가 있어서, 신이치랑 헤이지가 주의를 주거든」
어쩜 좋냐고 머리를 긁적거리는 카이토에게, 시호는 말해주었다.
「잘 들려」
「아, 정말? 다행이다」
카이토가 안심했다는 투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청력을 상실하기 전의 그를, 시호는 기껏해야 10분 가량 보았을 뿐이지만, 분명 무엇 하나 변하지 않았으리라 확신할 수 있을 만큼, 카이토의 발음은 명료했다. 그러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피나는 노력과, 얼마나 많은 좌절을 감당해야 했었을는지.
중학생들 사이에 끼여 수업을 받는 신이치의 옆얼굴과, 선 채로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형사들 틈새에서, 혼자 의자에 앉아 있어야 하는 헤이지의 눈길 속에, 얼마나 많은 것이.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내부에는, 얼마나 많은 감정이 담겨 있을 것인가.
『우리도 좋게 봐 줘』
얼마나 커다란 힘이, 존재할 것인가.
「이곳에 있을 거야」
시선은 맞추고 있지만, 왠지 모르게 먼 곳을 보는 것 같은 눈의 시호를 향해, 카이토는 웃어보였다.
「바보짓도 하고, 좋아하는 걸 하면서, 그렇게 우린, 여기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겠지」
선언하듯이 단호하게 말하고, 카이토는 탁자 위에 있던 펜을 시호에게 내밀었다.
「자아」
아무런 가공도 하지 않은 유성펜을 잠자코 바라보았다. 그리고, 하얀 종이와, 그 옆의 유리병도.
그녀가 없어도, 시간이 흐르면, 종이를 붙인 병 안의 내용물은 숙성할 것이다. 그 '시간' 속에, 설령 그녀가 존재하지 않아도.
『그날이 되면 시호짱도 여기에서 우리랑 같이 시음회를 갖는 거야』
『이곳에서, 함께』
그러나 이것은, 전세계의 어떠한 서약보다도 무거운, 맹세의 서명.
「……바보」
중얼거리며 이쪽으로 내밀어 오는 시호의 손에, 카이토는 웃고 펜을 건네주었다.
「그거 알아? 이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은, 포기라는 단어를 모르는 바보라고」
받아든 펜을 가볍게 쥐고 시호는 아주 조금, 마주 웃었다.
「……그러게. 당신네들을 보고 있자면, 싫어도 뼈저리게 느껴져」
「그치?」
반론도 없이 순순히 긍정한다. 시호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네)
알고 있다.
눈을 단 한 번도 돌리지 못하고, 계속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시호―. 카이토한테, 컵이 안 보인다고 말 좀 해 줄래?」
「당신 컵을, 못 찾겠다는데」
주방에서 고개를 불쑥 내민 신이치의 말을 시호가 전달하자, 카이토가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응? 그럴 리가……아, 맞다. 미안. 방에 두고 잊어먹었어」
「그냥 딴 컵 쓴다」
「제발 부탁이니 또 스시집 찻잔에 따르진 말아 줘」
여전히 문턱에 매달려 있는 신이치에게 못을 박고, 카이토는 주방으로 향했다.
「요구하는 게 많다. 제때 정리 안 한 니가 죽일 놈이지」
「많다뇨, 부탁한 건 하나뿐이잖아아―」
설왕설래하는 두 사람을 향해 살짝 소리내어 웃고, 시호는 눈길을 되돌렸다.
하얀 카드와, 손에 쥔 펜과, 테이블을 딛고 힘 있게 선, 매끄럽게 빛나는 유리병에.
『그거 알아? 이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은, 포기라는 단어를 모르는 바보라고』
「……정말 그래」
그녀의 내부에는, 얼마나 강한 '바보 파워'가 숨겨져 있을까.
그들을 지켜보면서 이곳에 서 있을 힘이, 얼마나.
펜의 뚜껑을 살짝 뽑았다. 하얀 카드를 집어, 시호는 한 번 더 병을 보았다.
부드러운 가을빛을 반사하는, 투명한 유리.
그것은 꿀과 설탕으로 재어 둔, 달콤한, 장미의 약속.
(註 1) 「……뜬금없이 푸우는 웬……」「꿀 하면 푸우, 푸우 하면 꿀 아냐」: 원문에서는 「さん付けて呼ぶヤツはじめて見た(존칭까지 붙여주는 녀석 처음 봤다)」「プーさんはプーさんやろ(푸우 씨는 푸우 씨잖아)」. 일본에서는 동물의 이름 뒤에 상을 붙여서 부르기도 합니다. 헤이지는 푸우를 푸우 씨(プーさん)라고 부르죠. 곧이곧대로 옮기면 아무래도 어색하기 때문에 적당히 수정했습니다.